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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컬럼,글

정수장학회문제,투표시간 연장등, 정치현안의 당사자가 자기는 제3자인척하니 복통이 터질 일이다.ㅎㅎㅎ 웃어야지....

by skyrider 2012. 11. 3.

[담쟁이 칼럼] “나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스무니다”

조 상 기(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이즈음 대선국면은 각종 논란의 와중에 있다. 정수장학회와 MBC, NLL, 투표시간 연장 등등. 그런데 이들 사안을 찬찬히 뜯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논란들을 잠재울 사람이 딱 한 사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국가가 ‘강압’으로 빼앗은 국민의 재산을 재원으로 삼은 데서 비롯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 사람은 장학회의 실질적인 오너인 박 후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편파방송과 방송 사유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MBC 문제의 해법 또한 박 후보가 쥐고 있다. 문화방송 정상화의 길은 새누리당이 여야가 합의한 대로 국회 조사 등에 협조하면 저절로 열리기 때문이다.

 

NLL 논란도 새누리당이 색깔 공세 탐욕을 버리면 금세라도 끝난다. 국정원장의 말마따나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고, 국가안보가 더 중요한 마당에 정상 간의 대화록 공개가 정치적 논란이 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이를 막지는 못할 망정 “잘 아는 사람이 밝히라”고 부추기는 등 정상외교의 기본인 ‘비밀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태는 자질의 문제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남북관계 성과를 깡그리 무화(無化)하는 바람에 대외적으로 정부의 계속성과 동일성이 크게 훼손되고, 우리나라의 국제 신인도가 현저히 낮아진 마당이다. 전해들은 이야기(傳聞)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봤다는 사람이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는 전직 대통령의 대화록을 두고 정쟁을 계속할 건가? 박 후보가 역사와 국익을 생각해 리더십을 발휘하면 끝날 문제다.

 

투표시간 연장은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장하고 선거 참여를 확장하는 일이다. 이야말로 박 후보의 결단에 달린 문제이고, 그의 구호인 ‘100% 대한민국’을 구현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미 재․보궐선거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이니 법만 고치면 하등 어려울 것도 없다. 100억원의 비용이 더 소요된다느니 하는 변명은 구차할 뿐이다.

 

그런데 이 논란들이 박 후보 한 사람의 결단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운 일이 있다. 정작 박 후보 본인은 마치 방관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수장학회는 “나와는 무관하다”, MBC 사태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거리를 둔다. 투표시간 연장은 “여야가 합의할 사항”이란다. 자신과 여당을 분리하는 데 이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정말 이들 문제에서 박 후보가 제3자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다. 오히려 그야말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당사자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과거 기득권 세력의 후계자이고, 현재 시퍼렇게 살아있는 여당 권력의 중심에 있으며, 미래권력을 차지하려는 새누리당의 후보 아닌가. 정수장학회의 실질적 오너가 박 후보라는 것은 현재 장학회 내에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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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사건이 있다. 김영삼 정부가 지난 1995년 문화방송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방송문화진흥회에 흡수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장학회 이사진이 그런 결정을 할 권한이 없는 상태여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 때 대표성 논란이 불거지자 대리인 이사장이 임기 1년여를 남긴 채 물러나고 비로소 실력자 박근혜가 등장했다. (<한겨레> 2012년 10월 27일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유신과 오늘’ 참조)

 

박 후보는 1995년 사태 때 대표성이 없으면 결단도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을 터이다. 실권 없는 집사가 오너의 재산을 맘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다. 박 후보는 이후 10년 동안 실질적인 오너로서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하다 2005년 강탈 의혹이 불거지자 자신의 자리에 최필립을 앉히고 물러났다. 다시 장학회의 대표성을 비운 것이다. 1995년의 학습효과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후 장학회의 대표성 진공상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온통 강탈재산의 사회 환원을 요구해도 이사회는 마이동풍이다. 대표성을 쥔 박 후보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한다. 개그콘서트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스무니다”가 되는 셈이다. 자신과 당을 떼어내는 것도 마찬가지 수법이다.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될 일도 없다. 이는 결국 오너가 결심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역설을 웅변하고 있다.

 

손자병법의 계편(計篇)에서는 병법이란 궤도(詭道-속임수)라면서 적을 속이는 방법을 들고 있다. 첫째, 할 수 있으면서도 못 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둘째, 사용하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한다. 셋째,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 반대도 성립함은 물론이다. 박 후보의 행태에서는 곳곳에서 이런 궤도가 묻어난다.

 

경제민주화만 해도 그렇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이 공룡처럼 경제생태계를 싹쓸이하고 있는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이 본질이다. 때문에 반드시 재벌 소유구조의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재벌옹호론자들의 아성인 새누리당이 이를 해낸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입에 달고 산다. 할 수 없는 데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는 “나는 새누리당이 아니무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진정성이 없는 이유다.

 

최근의 논란들을 접하면서 어쩐지 유쾌하지 못하다. 속는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집사는 오너의, 의원은 후보의 기색을 살펴가며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결국 박심(朴心)이 이 문제들의 해결을 원치 않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 때문이다. 공익재단은 끝끝내 내 것? 공정방송과 공영성 강화는 구두선? 색깔공세를 왜 그만 둬? 투표시간 연장은 죽으라는 말?  

 

모든 논란은 어김없이 박 후보로 통한다. 이는 풀기 나름에 따라 박 후보한테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모두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현안들 아닌가. 때가 때인 만큼 문제를 풀어내면 그 효과도 어마무지할 것이다. 일례로 정수장학회가 공익법인이라면 사회에 환원한다고 손해볼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죄를 대신 씻고, 득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어찌 보면 남의 염불로 극락가는 일이다. 

 

최근의 논란들은 이 나라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정도는 넘어서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대통령 후보라면 나라를 위해 기꺼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들 논란의 정리는 박 후보로서는 당선의 필요조건이다. 도망주의나 계산주의로는 절대 꿈을 이룰 수 없다. 버려야 이긴다. 버리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이기는 것이다. 궤도가 아니라 정도로 가야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