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건이 동시에 진행됐다. 한 사건은 ‘한국이었다면’, 또 다른 사건은 ‘한국이 아니었다면’ ‘사건’이 될 수 없는 사건들이다. 전자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고 후자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구속영장청구’건이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은 그 의미와 성격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사건의 발단은 주미 대사관의 ‘인턴’ 직원을 자신의 ‘사용자’인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한 데서 시작됐다. 한국 청와대 내에서 대변인과 인턴사이에 이런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면 과연 이번처럼 수사기관 신고와 외부 공개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청와대는 지난 13일까지 30명의 인턴직원을 뽑기위해 원서를 받았다. 그 중 다수 인원인 17명이 홍보수석실에 근무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 대변인이 이들 인턴직원들 중 한 사람에게 이런 행위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인턴을 어르고 달래서 말 한마디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윤창중 씨와 현지 공관 관계자가 윤 씨의 성추행에 놀라 울고 있는 해당 인턴의 방에 갔다고 한다. 무위로 끝났지만 윤씨와 공관 관계자들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성추행 의혹사건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CBS노컷뉴스
 
이 사건은 인턴과 한 방을 사용한 한국문화원의 여직원이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하면서 공식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한국문화원의 직원은 일종의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사표까지 쓰며 고발했다고 하니 그 용기와 정의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그 직원이 이런 내부 고발의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권부의 실력자를 경찰에 신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그 직원에게 용기와 정의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선 수사기관의 권력비리에 대한 수사의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도 이미 잘 확인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수사과장의 외압폭로 사례에서 보듯 수사 실무자가 의지를 가진다 해도 권부의 눈치를 보는 수뇌부가 압력을 행사해 수사를 막아버리거나, 국정원 내부고발 직원의 경우처럼 내부고발자만 징계 등으로 다치게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권력에 순종하는 수사기관은 국정원이나 경찰뿐만 아니다. 거악을 척결해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검찰 또한 마찬가지다. 검찰은 최근 <시사인> 주진우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척 간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에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가 해당 기사를 쓴 기자들을 고발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누구라도 기자와 언론사의 보도에 대해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수사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고발할 수 있다. 검찰이 해당 기자를 수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 기자는 네 차례에 걸쳐 성실히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네 차례나 소환해 조사해놓고 ‘증거인멸’을 구실로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소속이 분명하고 도주의사가 없는 기자를 권력자에 대한 기사를 썼다고 구속시키겠다는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14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행히도 주 기자는 법원에 의해 풀려났다 하지만, 주 기자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서울의소리>란 작은 인터넷신문의 백종은 발행인은 결국 구속되고 말았다. <서울의소리>도  박 대통령 친인척 살인 사건을  인용 보도해 박지만 씨로부터 고소당한 상태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국사회가 유신시대로 회귀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윤창중 성희롱 사건과 주진우 구속영장청구 사건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부의 실력자가 출장기간 중 인턴사원을 성추행한 사건은 국민에게 권력자의 기고만장함을 보여준다. 또한 수사기관이 최고권력자의 가족과 관계된 사건을 기사화 한 기자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독재시대 권력자의 하수인들이나 하는 언론통제의 ‘겁박질’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도 부친의 원죄를 인식하고 있기에 ‘신 유신시대가 도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으로 성공적으로 국가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퇴임 후 듣는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서 권력자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잘못이라도 내부 고발할 수 있으며, 언론의 견제와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민주적 소통의 사회 분위기를 대통령이 앞장서 조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아니어서 혹은 한국이기 때문에 발생할 권력형 사건들이 재임기간 동안 수시로 일어나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