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meBorder=0 width=250 allowTransparency name=google_ads_iframe_/7903310/Article_A1_0 marginWidth=0 scrolling=no>

1991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그는 동지를 잃었다. 그러나 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지 앞에서 그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바로 동지의 죽음만큼이나 처참한 운명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자살 사주. 23년 전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는 분신으로 숨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유죄가 확정되어 3년간 옥살이를 했다.

긴 세월이 흐른 지난 2월 13일, 강기훈씨는 재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음악을 좋아했고 그의 모친의 표현대로 신경줄이 가늘디가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가 ‘친구의 죽음을 사주한 패륜아’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온 23년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無望의 시간이었다. 그의 억울함은 필설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잃어버린 23년의 세월을 보상받을 방법은 없다.

   
1991년 5월 강기훈 씨가 명동성당에서 필적을 실연해 보이고 있다.
 

한 달여 전인 1월 16일 강기훈씨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지난 20여 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속에서도 무한 반복되는 장면’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누구를 욕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자신을 붙들고 있은 잔혹한 시간들과, 끝없이 지속됐던 불면의 나날과, 여러 사람들을 저주하며 보냈던 시간과도 이별하고 싶다”고 절규했다.

 

유서대필사건은 국가권력이 국가기관을 앞세워 무고한 한 시민의 삶을 파괴한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범죄행위이다. 검찰이 뚜렷한 근거도 없이 강기훈씨를 표적으로 지목했고, 국과수는 엉터리로 필적감정을 했으며, 사법부는 그 엉터리 결과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언론은 이들 국가기관의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범죄 시나리오는 완성됐다. 이처럼 거대한 권력기관들이 한 통속이 되어 무고한 한 시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을 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이 시나리오의 첫 번째 등장인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였다. 그 이전에 이미 ‘분신 제비뽑기’, ‘순서를 정해놓은 죽음’ 등 황당무계한 유언비어가 회자되고 있었다. 김기설씨가 분신한 당일,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서강대 박홍 총장의 충격적인 기자회견은 잔혹한 시나리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다음 순서로 등장한 검찰은 민첩하게 후속조치를 취했다. 박홍 총장의 기자회견 사흘 뒤인 5월 11일 검찰은 김기설씨의 필적이 있는 업무일지 제출을 전민련 측에 요구했고 그 이틀 뒤인 5월 13일에는 김기설씨의 여자 친구를 100시간이 넘도록 조사했으며 바로 사흘 뒤인 5월16일 검찰은 강기훈씨를 유서대필 혐의자로 지목했다.

 

사건의 주요 시점마다 등장해 검찰의 발표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언론은 사건의 진실 여부는 제쳐놓고 ‘팩트’와 ‘중립을 가장한 교묘한 양비론’으로 강기훈씨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섰다. 일부 진보적 매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사악하고 무책임하며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비인간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언론은 “진상 빨리 가려내자”며 압박을 가했다. 강기훈씨가 명동성당에서 농성으로 버티면서 체포가 지연되자 공권력의 위신이 실추됐다며 검찰을 자극했다. 강기훈씨에게는 정정당당하게 검찰수사에 응하여 스스로 결백여부를 증명할 의무가 있다며 검찰에 자진 출두하라고 훈계했다. 강기훈씨를 유일하게 보호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는 과잉옹호라고 꾸짖었다.

 

이렇게 흥분했던 언론들이 지난 13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자, 신문의 논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해졌다. 동아일보는 “이번 판결은 과거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바로 잡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조한 논지를 폈다. 23년전 공안정국을 이끌다시피 했던 조선일보는 사회면 12면 왼쪽에 ‘팩트’ 중심의 박스기사로 끝냈다. 조선일보는 갑자기 이 사건에 대해서는 무뇌아가 된 것처럼 아무런 논지도 의견도 없었다. 반성의 기색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검찰의 편견이 수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 사건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편견 때문이 아니라 검찰이 의도적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조작해낸 범죄행위, 그것이 이 사건의 실제 모습이다.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검찰 수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검찰은 유일한 증거인 전민련이 직접 제출한 김기설씨의 수첩, 전국 각지에서 나타난 김기설씨의 방명록 필적, 김기설씨 필적이 나와 있는 전민련 업무일지 등을 모두 강기훈씨가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그러한 주장은 가능하지도 않은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또한 검찰이 김기설씨의 채무각서와 일본인 감정사의 필적감정을 배척한 것도 범죄구성의 의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검찰은 국과수 필적감정을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로 제시했는데 그것은 국과수라는 기관의 감정이라기보다는 김형영씨라는 한 국과수 직원의 개인 감정결과였고 감정 자체도 허점 투성이였음이 밝혀졌다. 더구나 김형영씨는 당시 문서위조단 사건에 연루되어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지만 검찰은 이 사건에서 허위감정 부분을 빼고 단순 뇌물사건으로 돌림으로써 유서대필 사건의 실체를 감추려 했다.

 

검찰이든 사법부든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지만 실제로 행사하는 주체는 검사와 판사 개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책임은 추상적 개념의 국가 뿐 아니라 실제로 이를 행사한 개인에게도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권력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일반 원칙에도 부합한다. 즉 무고한 인생을 파멸시킨 국가폭력을 실체가 없는 추상적 국가에만 떠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최종심 판결이 나오는 대로 이 사건의 검찰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조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서 편견이나 실수가 아닌 의도성 또는 고의성의 범죄행위가 있었는지를 낱낱이 밝혀야 하며 결과에 따라 그에 필적한 응징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이 국가폭력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