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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뉴스

[스크랩] 장례식, 꼭 죽어서 해야 하나요? 살아있을 때 하고 싶습니다.

by skyrider 2018. 8. 16.
장례식, 꼭 죽어서 해야 하나요? 살아있을 때 하고 싶습니다.
“손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작별인사 나누고 싶습니다”
암 투병 중인 김병국 노년유니온 위원장, 본인 장례식 열어
등록일 [ 2018년08월14일 21시18분 ]

김병국 노년유니온 위원장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치루고 싶다고 했다. 14일, 그가 머물고 있는 병원에서 그의 장례식이 열렸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이 열렸다.

 

노년유니온의 위원장을 맡은 김병국 씨의 장례식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사람들을 초대해 장례식을 치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 일이라면 죽음을 반드시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삶에 초대됐던 사람들을 장례식에 초대해 이야기 나누며 웃고 싶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장례식 초대장에 이렇게 썼다.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그의 장례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14일 오후 4시에 서울시동부병원에 모였다. 그가 초대장에 쓴 것처럼 사람들은 검은 옷이 아닌 알록달록한 예쁜 옷을 입고 왔다.

 

김 위원장은 2012년에는 노년유니온에 가입했고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빈곤노인을 위한 기초연금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청와대 앞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생계급여에서 노인 기초연금을 삭감하지 말라’며 일명 '도끼상소'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노인 팟캐스트 ‘나는 꼰대다’에 출연하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빈곤노인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암이 문제였다. 올해 노년유니온 위원장을 맡은 직후, 그의 몸에서 암이 발견됐다. 현재 암은 그의 몸에 퍼져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 내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을 얼굴에 한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소리내며 울지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소리내며 웃지도 않았다. 몸이 아파서였는지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수줍어 했다. 사람들에게 활동에 관해 당부의 말을 전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과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사람의 얼굴을 깊게 들여다 봤다.

 

김 위원장은 사람들에게 참석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죽음을 슬프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죽음을 즐겁게 이야기 하자. 사람은 어차피 모두 죽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좀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 뿐이다. 너무 울지들 말라”며 사람들을 되려 위로했다. 그러면서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의 의견에 동의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먼저 손을 내밀고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김병국 씨는 자신의 장례식 내내 사람이 담을 수 있는 모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어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김 위원장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풀어놨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정욱 국민연금 노조원은 마이크를 잡았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그는 빈곤노인의 현실을 알리고 바꾸는 데 김 위원장이 함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 노조원은 “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사람들에게 기초연금을 적게 주거나, 빈곤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가 뺏는 일 등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이 때 선생님을 동지로 만났다. '도끼상소' 당시 국회의원에게 호통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인연을 추억하며 그가 갈구했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나고 김 위원장과 이 씨는 울며 포옹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는 “2014년 5월부터 기초연금 문제를 해결하려 길거리에서 어르신과 같이 활동했다. 그는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가장 앞장서 노인인권과 복지의 현실을 토로했다. 늘상 배움을 주셨기에 마음속으로 감사했고 존경했다”고 말하며 그가 올 가을에 코스모스를 보며 하늘소풍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하는 장례식의 의미도 이야기 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낮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는데, 어떤 장례식이기에 낮에 가냐고 물어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놀라워 했다. 친구들이 어르신의 장례식 이야기를 들으면서 뇌리에 스친 것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이대는 죽음을 일상에서 생각하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숨을 쉴 때 인생에서 같이 했던 사람들과 내 죽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장례식에 초대장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일했던 종로시니어클럽의 관장 전달석 신부는 그의 ‘살아있는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30여년 동안 성직자로 살면서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픈 장례식은 이별준비를 하지 못한 채 고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볼 때였다. 오늘 이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죽기 전에 이별의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중요한 시간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면서 "영혼을 가진 인간의 육신이 다하는 것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김병국 씨는 이 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고 싸워서 멀어졌던 사람도 다시 만나 화해했다. 다만 그 장소가 자신의 장례식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둥글게 모여 춤을 췄다. 그리고 그가 병실로 돌아갈 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이별을 준비한,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이정욱 국민연금 노조원과 김병국 씨가 인사하고 있다.

이날, 김병국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두 곡을 불렀다.

김병국 씨의 장례식에 초대된 사람들.

김병국 씨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출처 : 언덕위에 바람
글쓴이 : Ψ風雲流水(이상기), 몽유비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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