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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일지

비행 못한 비행일지?

by skyrider 2008. 7. 26.

일시;2002.0818
장소;용인 초부리 정광산
비행시간; 0


오랜만에 중부지방이 개인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이정호팀장, 홍기학부장, 천만필대장 과 용인 정광산을 가기로 했다.

지난 6월16일 충남보령 옥마산 비행 이후 실로 오랜만에 비행에 나선 참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준비를 끝내고 차를 몰고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를 마치자 마자 약속장소로 내뺄 셈이였는데 미사 후에 휴대폰을 켜보니 이정호 팀장한테서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다.
좀 늦어질거란다. (애구 그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좀 더 먹고 나올 걸...)

시간이 남아 다시 집으로 들어 갔다가 정광산 착륙장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애고!!- 이륙장 바람은 배풍!

현지의 천지연 팀 몇명이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엔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은데 천대장이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동풍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올똥 말똥 아리까리 하게 전화를 하더니 얼마 후 내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오겠단다.
홍기학씨는 회사일을 잠시 보고 집에 갔다가 오겠다는 것을 바람이 어떨지 모르니 집에가서 전화를 해보라고 일러놨다.

착륙장 윈드 색은 정풍쪽으로 돌아 섰다. 그러나 여전히 이륙장은 배풍. 구름은 두껍게 하늘을 가리고 있고 이따금 갈라진 구름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빠끔이 내다 보인다.

현지팀은 올라가려고 4륜 구동 트럭을 탄 채 나를 부른다.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혼자 하릴없이 기다리니 천대장이 도착한다.
천대장은 아무래도 태풍영향으로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며 이 바람이면 차라리 대부도가 나을 거란다.

이팀장은 목소리가 콱 잠겨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제주에서의 장기간 다이빙 강습에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먼저 올라간 현지 팀 더미가 배풍이 약해진 틈을 타 이륙에 성공한다.
허나 배풍에 등을 떠밀려 빠르게 착륙장으로 직행-
이 후 두명이 더 이륙했으나 역시 빠르게 쫄쫄이 비행-

하늘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구름의 흐름도 많이 약해져 잘하면 바람이 돌 것 같아
우리도 4륜 쎄렉스를 타고 이륙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은 이 번 비로 무섭게 할퀸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배수로 곳곳에는 한쪽 허리가 움푹 파여 살덩이가 물텅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쓰러진 나무들이 나 딩굴고 길옆 배수로 옆의 나무들은 하나 같이 전부 앙상한 뿌리가 들어 난 채로 엉성하게 흙덩이들을 겨우 잡고 서있다.

차는 '덜컹 덜컹'- 한 길이나 뛰어 올랐다가 옆으로 기우뚱거리고 헉헉 댄다.
길옆의 나뭇가지들이 느닷없이 얼굴을 때려대고...
이륙장면을 구경하겠다고 같이 차를 탄 관광(?) 커풀은 놀이 동산의 롤러 코스터 보다 더 무섭단다.

오래만에 맡아보는 숲속의 나무향기는 정신이 버쩍 날 정도로 산뜩하다.
서늘한 숲을 벗어나 드디어 정상!
윈드색은 줄기 차게 동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꼬리를 살랑인다.

오랜만에 서 보는 이륙장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비온 뒤끝이라 멀리까지 시야가 뚜렷하고 하늘은 군데 군데 꺼먼구름이 덥힌 곳도 있고
터진 구름사이로 햇볕이 조명불빛처럼 내려 꽃히는 곳도 있다.

이천 방향의 먼 하늘에서는 써멀이 올라오는 듯, 조그만 뭉개 그름이 퐁퐁 피어 오르더니 서쪽으로 흐르며 징검다리 모양의 구름다리를 놓는다.
크로스 컨츄리를 하는 베터랑 비행자 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늘 구름길이다.
난 언제나 저런 구름길을 타 보나.....

정광산 이륙장은 오래만에 나온 햇볕으로 눈이 부시다.
바람은 여전히 배풍-. 윈드색을 보니 바람은 깨끗하나 뒤쪽 사면의 나뭇잎들은 거의 흔들리질 않는다. 릿지도 안되는 높은 쪽에서 오는 바람이다. 보통때와는 다른 현상이다.
천대장의 말처럼 일본 남쪽의 태풍 영향인 것 같다.

기다리다 지친 몇몇은 용감하게 배풍이 좀 약한 틈을 타, 전방이륙으로 냅다 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륙 성공하나 그대로 쫄쫄이-

더 기다리는 동안에 저 멀리 성남 공원묘지 쪽으로 무지개가 보이는 듯하더니 얼마 안있어
국지적으로 소낙비를 뿌리는 모습이 보인다. 꼭 싸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같다.
이륙장 쪽도 구름이 다시 두껍게 덥히고 빗방울이 한 두방울 떨어진다.
하늘의 조화는 변화무쌍하다. 아까는 하늘이 벗겨져 햇볕이 따겁더니 이 무슨 조화람?

기체를 펼쳐놓고 호시탐탐 바람이 돌기만을 기다리던 비행자들이 술렁술렁 하며 기체를 부리낳게 접는다.

그러나 여기는 더 이상 비를 뿌리진 않을 것 같다.

시간은 어느 덧 4시, 정광산 군기반장(?)이 드디어 배풍방향으로 이륙준비를 한다.
그러나 밑에서 사면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아니어서 케노피의 공기압이 약하다. 이륙 후 산 골짜기 능선을 끼고 착륙장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하면 오리알이 될지도 몰라 몇번을 기체를 올렸다가 내려 놓는다.

시간은 어느덧 5시-, 군기반장이 포기하고 내려 가잔다. 요럴 때 기다린 것이 억울해서 용감하게 이륙을 고집하는 한 두사람들이 꼭 있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선다. 모두들 기체를 잡아주고 힘차게 앞으로 뛰어 나간다.
기체가 앞으로 쏟아질 듯 하더니 아슬아슬하게 이륙한다. 다행히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실패하여 나무에라도 걸었다면 여기 이륙장 사람들 모두는 이륙을 말리지 않았으니 공동 가해자가 되나?

모두 들 철수, 내려오는 트럭은 올라올 때보다 더 아슬아슬하다.
곤두박질을 하며 곧 처박힐듯 말듯하더니 드디어 다 내려왔다. 휴~ ~ 정말 롤러 코스터 보다 못지 않군!

이렇게 해서 62일만의 비행은 비행 못한 비행이 됐다.
그래도 이륙장에 오랜만에 서봤으니 기분은 상쾌하다. 길짐승이 날짐승 흉내를 내려니 맘대로 될 수 있나? 하늘이 허락해야 되는 것이지.

오늘은 패러는 인내하는 레포츠라는 걸 다시한번 배운 날이다.

오늘 난 잘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