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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자료창고

김수환 추기경의 "공"과 "아쉬움"

by skyrider 2009. 2. 17.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두 모습
  김동수 (kimds6671)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나이는 여든 일곱 살이다. 여든 일곱을 사는 동안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가 겪었던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정권, 5.16군사쿠데타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군사독재까지 모두를 겪었다.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을 여느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우리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추기경'때문만은 아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이후 우리 역사 변곡점마다 군사독재정권을 향하여 몇 마디 울림을 통하여 인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지지하였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이 아직 보수성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생방송으로 중계된 1971년 성탄절 미사에서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라고 하여 박정희 정권을 향한 가톨릭의 저항을 일으켰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드러나자 추모 미사에서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물은 것처럼 '네 아들, 네 제자, 네 국민인 박종철군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고 했다.

 

어떤 말보다 우리들에게 새겨진 말은 6월 항쟁 당시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라고 한 말이다.

 

총칼밖에 없다는 말과 나를 밟고 가라는 말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게는 치명상이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시민에게는 힘이 되었다. 이 말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민주주의와 시민 앞에 무릎꿇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김 추기경은 민주주의를 위한 발언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살았던 목자이기도 했다.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맨 윗자리를 차지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가톨릭 신자가 아닐지라도 국민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했다. 개신교 목사인 나 역시 독재 정권을 향하여 던졌던 몇 마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었으므로 개신교 어느 목사보다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향하여 던졌던 몇 마디 말 이후 김수환 추기경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념과 사상의 자유를 옥죄이는 '국가보압법' 폐지를 그는 2004년에 반대했다.  2004년 9월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한창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면담에서 “국가보안법은 개정이 필요하고,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보법 폐지를 반대했다. 불과 3년 전인 2001년은 국가보안법폐지 '1만인 서명'에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2005년 7월 강정구 교수(동국대)가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한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글에서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물론 외세가 기원한 내전)" 라는 내용으로 인하여 국가보안법 논란이 일자 김수환 추기경은 강정구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정부가 인권 운운하며 그것을 막는다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한 사학법이 개정된 이후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본부장 김성영 총장·이하 사학수호본부) 고문으로 위촉되었고 "개정 사학법이 단순히 사학비리를 없애는데 있다기보다, 숨은 뜻이 있는 것 같다"며 사학법 개정에 강력한 반대했다.

 

민주주의를 침해했던 독재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과 사학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 개정한 사학법을 '숨은 뜻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함으로써 보수성을 드러냈는데 이는 가톨릭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성지'였지만 지금은 촛불이 함께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가는 모습이 하나의 예다.

 

가톨릭이 김수환 추기경 한 사람이 보수성을 띠었다고 보수로 변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가톨릭은 '1인 체제'와 비슷하다. 교황을 최정점으로 한 위계질서가 있는 만큼 추기경 말 한 마디는 아직도 침범하기 힘들다.

 

김수환 추기경이 1970-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 정권에 저항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더 나은 진보를 이루어가야 할 시기인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이후 보여주었던 보수적인 행보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죽음 앞에서 무조건 칭송만 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