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종교가 이 땅에 전래되고 나서 토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땅바닥 밑에까지 그 가르침과 교의(敎義)가 스며들고, 스며든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그 종교를 대표하는 스타급 인물이 배출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200년쯤 되지 않나 싶다.
우선 불교를 봐도 그렇다. 불교 후발국인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58년이다. 고구려에서 내려온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사회에 인과(因果)와 윤회(輪廻)사상을 뼈대로 한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이차돈이 목이 잘리는 순교를 겪어야 했다. 전래 이래 200년쯤이 흐른 600년대 중반에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이 신라에서 배출됐다. 서기 600년대 중반은 신라가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살벌한 시기였다. 원효와 의상은 이 살벌한 시기에 신라인의 민심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주자학은 어떤가? 고려 후기의 안향(1243~1306)이 중국 연경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온 시기가 충렬왕 16년인 1290년으로 보고 있다. 후발 주자인 주자학은 고려 국교였던 불교를 이단사설로 몰아붙이면서 조선의 국교가 되었고, 1500년대에 이르러 퇴계와 율곡을 배출하게 된다.
주자학은 국내에 들어오면서 순교자는 없었다. 대신 1500년 무렵을 전후해서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라는 '4대 사화'를 겪어야 했다. 이 사화를 거치고 나서 퇴계, 율곡이 등장했다. 안향 이래로 계산하면 200년이 넘는 시간이다.
천주교는 이승훈(1756~1801)이 당시 북경에서 포교하고 있던 포르투갈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조선에 들어온 시기가 정조 8년인 1784년이다. 이때부터 따지면 김수환 추기경의 등장도 대략 200년 주기에 접근한다.
불교나 주자학에 비해 천주교는 토착화 과정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는 점이 다르다. 특히 제사(祭祀)문제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천주교가 이때 제사문제를 원만하게 수용했더라면 그 뒤로 한국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 비추어 보면 김수환 추기경은 천주교 전래 200년 만에 배출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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