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라산 전망대에서 본 개성공단 야경 |
ⓒ 연합뉴스 |
| |
북한이 '말 대 말'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돌입했다. 한국 정부도 곧 '행동 대 행동'으로 돌입할 태세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 이른바 '제3차 북핵 위기'라는 먹구름이 감돈다.
북한은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과 불능화한 핵시설의 원상복구를 선언하더니 이윽고 말이 아닌 직접 행동에 나섰다.
북한은 이미 핵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감시카메라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불능화 작업을 중단시켰다. 불능화 작업을 감독해온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도 추방했다. 이로써 2007년 7월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한 뒤 불능화 작업을 모니터하기 위해 북한에 들어간 IAEA 검증팀은 1년 9개월 만에 북한에서 나오게 됐다.
평양의 불꽃놀이는 '제3차 북핵 위기'의 징후
지난 14일 IAEA 검증팀에 추방명령을 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날 밤 고(故)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 행사의 하나로 평양 대동강변에서 열린 축포야회에 참석, 불꽃놀이를 관람했다. 3기 김정일 체제의 출범을 축하하는 의례이지만, '제3차 북핵 위기'의 징후를 상징하는 위험한 불꽃놀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 다음날인 10일자(4면)에 북한 국방위원회 성원 12명(김정일 위원장 제외) 전원의 얼굴 사진을 실은 것으로 16일 뒤늦게 확인됐다. 이례적으로 전원의 사진을 공개한 것은 국방위의 지위 강화 및 권한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전쟁 지도부의 상설화를 과시하는 것일 수 있다.
불능화 중단 위협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9월에도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지연하자 불능화한 핵시설 원상복구를 주장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검증팀이 핵시설에 접근하는 것만 차단하고 추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IAEA 검증팀을 내쫓았다. 또 검증팀과 함께 활동해온 미국 정부 관계자 4명에 대해서도 추방명령을 내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초강수다.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할 경우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로 이어진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추출 의혹을 내세워 중유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붕괴시킨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재판이다.
제1, 2차 북핵 위기 때보다 선제적, 복합적 갈등
당시 중간선거를 통해 상하원 양원을 모두 장악한 미 공화당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은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인 북미 제네바 합의 체제를 깨기 위해 중유 공급이라는 행동에 들어갔고, 북한 역시 핵시설 동결 해제 및 재가동이라는 행동에 돌입했다.
북한은 당시 IAEA 사찰관 입회 하에 핵시설 봉인장치를 모두 제거하고 핵연료봉 장전 준비를 갖춰 핵시설 동결 해제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해 12월에는 IAEA 사찰단을 추방했다. 곧 이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1월)와 영변 핵시설 재가동(2월)으로 이어졌다. 94년 제1차 북핵 위기 및 제네바 합의체제로 동결된 영변 핵시설에서 8년만에 폐연료봉 재처리와 플루토늄 추출이 재개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2002년에 비해 더 선제적이고 복합적이다.
북한은 행동에 앞서 지난 14일 성명에서 '경수로 건설 검토 카드'를 공개했다.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존의 흑연감속로가 아닌 경수로를 짓겠다는 것은 우라늄 농축을 시도하겠다는 의미다.
알다시피 HEU 문제는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사안이다. 결국 북한은 제1,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영변(플루토늄)+경수로(우라늄 농축)'라는 두 개의 카드를 한꺼번에 보여주며 미국을 압박한 것이다.
개성공단이냐 PSI냐, '제3차 북핵 위기'의 갈림길
|
▲ 북한 최대 경축일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 '태양절'을 맞이해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1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전단과 북한 화폐를 담은 대형 풍선을 북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
ⓒ 남소연 |
| |
물론 북한이 '즉각적인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고 해서 당장 핵시설이 재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이미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한 바 있다. 냉각탑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지만, 다시 짓는 데는 적어도 6개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북한이 영변에 있는 모든 핵시설을 재가동하려면 6~12개월은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때까지는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강경한 초강수는 그만큼 대화가 절실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 원천 무효'를 선언한 것 역시 수년째 공전하고 있는 번거로운 6자회담보다는 북미 양자협상에의 열망을 반증하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일괄타결'을 통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북한과의 직접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타임은 15일 인터넷판에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라는 사실은 미 국무부 관리들 사이에서 공유돼온 공공연한 비밀에 해당한다면서 양자간 대화를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수출 포기를 대가로 경제원조와 안보보장,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 등 양보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악화를 거듭해 온 남북관계는 북한의 로켓 발사와 남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 발표를 앞두고 또다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은 16일 "개성공단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를 통보할 게 있다"며 '관리위원회 주요 간부와 책임있는 남쪽 당국자'가 21일 개성으로 오라고 통보해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중대한 문제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은 내일 'PSI 전면참여시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한조처를 통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1차 위기는 '서울 불바다'... 3차 위기는 '서울 군사분계선에서 50km'
북한은 18일에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이름으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대한 전면 참여 등을 통해 가하려는 어떤 압력도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대결포고 선전포고로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총참모부 대변인은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km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김영삼(YS) 정부 당시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시키는 협박이다.
94년 2월 북미간의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김영삼 정부는 노골적으로 북미 협상안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유사시 단시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27'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열린 3월 남북특사회담 실무접촉에서 남측이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거론하자 박영수 북측 단장이 "우리는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서울 불바다' 위협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감이 커졌지만, 제1차 북핵 위기는 결국 한국이 배제된 가운데 북미 양자회담으로 해결되었다. 사실 북한이 93년 3월 NPT를 탈퇴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 것도 새로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핵확산을 우려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여 그해 6월 북미고위급회담을 통한 포괄적 협상을 시작했다.
YS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북미대화에 반발했다. 11월 클린턴 행정부가 일괄타결안을 수용하려하자 YS는 정면으로 반대해 북미협상을 좌초시켰다. 이런 가운데 반발한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봉 추출을 시도하자 미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공격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가 전쟁 위기로 치닫는 94년 봄의 '제1차 북핵 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YS의 "1차 북핵 위기 당시 전쟁 막았다" 무용담은 책임회피 위한 둘러대기
YS는 최근까지도 방송에 나와 지난 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전쟁발발 두 시간 전에 클린턴과 전화로 싸워서 전쟁을 막았다고 무용담처럼 자랑한다.
"당시 동해안에 영변을 때리려고 미국 해군군함 33척, 2개 항공모함이 와 있었다. 그것을 내가 강력히 반대했다. 국경선의 (북한) 포가 남쪽을 보고 있는데, (영변을 공격하면) 일제히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 전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로 절대 반대했다."(13일, SBS 라디오 특별기획 `한국현대사 증언')
그러나 YS는 북미간의 일괄타결을 반대함으로써 한반도를 전쟁발발 직전상황까지 몰고간 원인 제공자이자 정책적 오판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성동격서식 둘러대기다.
실제로 YS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마무리된 94년 10월 중순까지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붕괴에 직면해 있는 북한과 타협한다는 것은 북한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며, 한국과는 달리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적은 미국이 북한에 속고 있다"며 제네바 합의 내용에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결국 YS는 '북한 붕괴론'을 맹신해 능력에도 부치는 북핵 해결을 구실로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 YS 집권 5년은 남북관계의 '잃어버린 5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북핵 문제 해결방법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계속해 불편한 한미관계 속에서 IMF 금융위기까지 초래함으로써 차기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남겼다.
훼방자와 조정자, 그리고 방관자...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북핵 위기 |
시 기 |
발단/원인 |
상징 언술 |
해결 |
갈등 주체/한국 역할 |
제1 차 |
1994년 봄 |
영변 핵개발 |
서울 불바다 |
제네바합의 |
북미/훼방자 |
제2차 |
2002년 10월 |
고농축우라늄(HEU) |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갖고있다 |
6자회담 |
북미/조정자 |
제3차 |
2009년 4월 |
로켓발사/PSI |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50km |
북미회담? |
남북한/? |
그런 점에서 영변 핵개발 의혹 제기에 NPT 탈퇴로 맞선 1차 북핵 위기 당시 남한은 북미 협상의 훼방자였다. 반면에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제네바 합의)을 해체하려는 부시 행정부 네오콘의 HEU 의혹 제기와 중유 공급 중단에 NPT 탈퇴와 영변 핵시설 재가동으로 맞선 2차 북핵 위기에서 김대중 정부는 북미협상의 파국을 막기 위한 조정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방관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필자가 만든 위의 <표> 참조).
1, 2차 북핵 위기에서 한국 정부가 훼방자였건 조정자였건, 북핵 위기는 모두 북미 갈등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지금 방관자를 넘어 PSI 전면참여라는 행동 대 행동을 꾀하고 있다. PSI 전면참여는 북미 갈등의 산물인 핵 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3차 북핵 위기의 갈등 주체가 북미에서 남북한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는 YS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제3차 북핵 위기의 갈등 주체는 남북한이었고, PSI가 직접적 발단이었다고 역사에 기록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