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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잘 돌아가나?

중수부 출신 변호사가 빠진 이유? 정말 몰라? 또 다른 야망의 계절 아니길

by skyrider 2010. 11. 10.

이상해진 <대물>, 설마 <야망의 세월> 아류로?
[기획-'대물'은 OO이다] 또다른 편향적 정치드라마는 되지 말길
10.11.10 15:04 ㅣ최종 업데이트 10.11.10 15:57 김지영 (redoox)

<야망의 세월>은 1990년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의 성공을 모델로 삼아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다. 그 주인공 역할을 했던 유인촌씨가 지금의 문화부 장관이다.

 

정치드라마의 특성상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는 가운데 '이명박'이라는 자연인은 공채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아주 짧은 기간에 사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인간성까지 좋은.

 

이 드라마는 단지 이명박 대통령의 굵직한 성공 스토리를 모티브로 삼았을 뿐 인간성까지를 모티브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청률에 목을 매야 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적절한 긴장감을 위해 적절하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배치가 필요했을 뿐이다. 주인공은 당연히 좋은 사람이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저 대기업 사장이던 이명박이란 사람의 이미지가 <야먕의 세월>로 인해 바뀌었다는 점이다. 국민들 머릿속에 비상한 머리와 통찰력 있는 판단, 저돌적인 추진력, 주위 모든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 줄 아는 폭넓은 지도력, 게다가 인간성도 참 괜찮은 그런 사람이라는 환상을 심어준 것. 

 

이 드라마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주가가 급등한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물> 9회까지의 진짜 리얼리티는 조배호

 

  
SBS 드라마 <대물>. 1회분에서 서혜림(고현정)이 대통령이 된 모습.
ⓒ SBS
대물

<대물>이라는 정치드라마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대통령 선거를 2년여 앞둔 미묘한 시점, 여성 대통령이 주인공이라는 점 등은 제법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20년 전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학습효과까지 있었으니 당연히 뭇사람들의 희뜩한 눈초리도 있었다.

 

그건 개봉박두를 부르짖을 때 일이고, 어느덧 그 드라마가 9회를 넘겼다. 지당하신 말씀을 눈물 나는 감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고현정(서혜림 역)씨의 뛰어난 연기력도 일품이지만 도무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오토바이를 타고 조직폭력배와 17대 1도 불사하는 불량 학동 출신 검사 권상우(하도야 역)씨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

 

그러나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하니 구성이나 스토리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주인공들의 리얼리티는 빵이라는 말씀이다.

 

그나마 절절한 리얼리티가 엿보이는 인물과 장면이 몇 있다. 노회한 집권당 총재 조배호(박근형분)가 그렇고, 그 뒤를 딸랑거리는 충신 오재봉이 그렇다. 잠깐 나오고 말았지만 조배호의 밑을 닦고 다니는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변호사는 아주 적절하고 현실적인, 그래서 누구나 수긍이 가는 역할이다. 남송지역 보궐선거에서 서혜림과 맞붙었던 김현갑의 선거 행태는 지금도 선거철이라면 아무 데나 가도 볼 수 있는 극 리얼리티한 장면이다. 공약은 실천공약이 아니라 당선공약이라는 서혜림의 보좌관 왕중기의 일갈은 참으로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오죽하면 입만 열면 나오는 게 모두 거짓말이라는 사람을 "뭐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세상이다. 너무 삐딱한가? 아직 세상 물정 모르시는 말씀이다.

 

시청률 1위 본격 정치드라마라지만

 

  
SBS 드라마 <대물>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 SBS
대물

 

자, 그럼 여기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본격정치드라마 <대물>의 속살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먼저 드라마의 바탕에 깔린, 앞서 말한 리얼리티한 우리네 현실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조배호를 필두로 한 정치인들의 추악한 이면에서 공감하고, 검찰출신 변호사가 노회한 정치인의 뒤를 봐주는 대목에서 공감한다. 간척지 개발을 둘러싼 정치인과 재벌회사의 땅 투기 놀음에 공감하고, 대책 없이 쫓겨나야 하는 간척지 주민들의 아픔에 공감한다.

 

대체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이른바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들의 대체로 음흉하고, 불쾌하고, 냄새나는 것들이다. 대책 없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야 하는 서민들의 삶에서는 아픈 공감이 있다.

 

바로 우리가 보아왔던 정치현실이고 대기업의 행태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속절없이 당하고만 살아야 했던 서민들의 삶이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드라마는 이런 공감을 제법 현실적으로 그려주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시킨다.

 

  
SBS 드라마<대물>.
ⓒ SBS
대물

이어서 이런 추악함이 짬뽕곱빼기 같은 현실에 젓가락 던지고 시원한 물 한 컵 원샷 하고 싶은 정서를 비집고 나오는 인물이 바로 정치인 서혜림과 열혈검사 하도야다. 고등어만한 은어떼의 귀환을 위해 정치를 시작한 서혜림과 제 아무리 높은 놈도 죄를 지으면 벌을 줘야 한다는 하도야는, 그러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인물 설정이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서혜림 같은 정치인은 드물고 대한민국 검찰에서 하도야 같은 검사는 없다. 아니 하도야와 같은 강직한 검찰은 있을 수 있겠으나 감히 여당총재를 시골지청으로 소환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그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한 부대 장치이다. 그리고 서혜림과 하도야는 현실에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정의의 사도들이다. 이름하야 판타지다. 괜히 시청률 높은 게 아니다. 옛날 옛적 홍길동처럼 불의의 시대에 정의를 살려내는 주인공들에 시청자는 환호하게 마련이다.

 

만약 현실에서도 서혜림과 하도야 같은 활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이 드라마 시청률 1위 같은 거 상상할 수 없는 게 된다. 일상이 그러할진대 굳이 드라마를 아껴 볼 필요가 있을까? 참으로 불편한 역설이다.

 

'미친 존재감' 원조 고현정=서혜림을 주목하라

 

그런데 작가와 피디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드라마에 변화가 오는 조짐이 보였다. 외압설과 외압을 부인하는 설이 섞여 들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8회 방영분부터 조배호의 비리를 감싸주던 차장검사가 느닷없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하도야를 응원하는가 싶더니, 9회 방영분에는 조배호의 충신 오재봉이 놓은 함정에 빠져 검사 옷을 벗게 된 하도야를 위해 눈물을 삼키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느닷없는 장면 전환에 되게 어색했다.

 

검찰이 갑자기 착해진 것이다. 조배호의 변호사인 전직 대검 중수부장의 현실감 있는 활약(?)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리얼리티가 변색이 되니 감정이입도 안 된다.

 

그리고 서혜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칙을 지키는 여성 정치인. 곧 대통령이 될 원칙을 지키는 여성정치인. 무언가 좀 구리다. 이명박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다루었던 <야망의 세월>의 아류는 분명 아니지만 난 또 다른 아류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친 존재감'의 원조인 고현정이 서혜림이라니.

 

미디어는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든 궁극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예컨대, 1970년대 외화를 주름잡았던 서부영화가 대표적이다. 그저 우리는 존 웨인의 빠른 총 솜씨와 말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모습에 황홀해하면서 존 웨인이 죽이는 인디언이 왜 나쁜 사람들인지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배타고 건너온 청교도 백인들의 영토확장의 역사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진실은 서부영화 속에서 설명되지 않고 오히려 인디언은 나쁜 사람들 백인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인식만 심어주었다.

 

인디언의 증언을 통해 인디언 학살의 진실을 알게 한 저 유명한 책 <나를 운디니드에 묻어주오>를 읽은 나조차 아직도 존 웨인은 살갑고 인디언은 무섭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서부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감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미디어는 무섭다. 

 

'또다른 존 웨인' 서혜림, 판타지로만 치부하기엔 위험하다

 

  
SBS 드라마 <대물>.
ⓒ SBS
대물

총 26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정치드라마 <대물>의 주인공 서혜림이 추악한 정치판에서 원칙을 지켜내며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 그 사이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또 다른 존웨인이 생겨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착하게 거듭난 검찰과, 현실정치의 추악함을 대변하는 조배호에 맞서 싸울 하도야 검사와, 비리가 들끓는 정치판에서 순결하고 순정한 마음으로 고등어만한 은어떼를 회귀시킬 서혜림은 그저 판타지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위험한 구석이 있다.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열광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가끔 현실을 혼동시킨다. 그리고 그 혼돈의 와중에 우리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적절한 멜로와 적정한 선악구도 적당한 리얼리티, 그리고 현실을 망각케 하는 판타지의 적합한 조합.

 

어쩌면 우리는 정치드라마 <대물>이 26회를 거치는 동안 착한 검찰에 대한 뚜렷한 희망과 서민의 삶을 위해 원칙을 지켜내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판타지를 현실로 희망할지 모른다. 본격 정치드라마 <야망의 계절>이 지녔던 노골성을 우회한 또 따른 편향적 정치드라마의 아류?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있다. 미디어는 굉장히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다. 주인공과 나를 가끔 착각하게 할 만큼 감정몰입이 뛰어나다. 그리고 시청자에게 어떤 결론을 내려주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을 제작사와 작가, 그리고 피디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시청률 1위의 정치드라마 <대물>을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