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죽음, 8년간 어머님을 속였습니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2.11 12:07 | 누가 봤을까? 20대 여성, 전라
[오마이뉴스 신광태 기자]
"아무래도 어머님이 돌아가실 것 같다."
2008년 12월. 눈이 상당히 많이 내리던 어느 금요일,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눈을 감으시기 전에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은 했지만, 눈 때문에 평소보다 40여분 병원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어머님은?"
"아직 살아계셔" 라고 형님께서 말씀은 하시지만,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눈치십니다.
병실에는 의식도 없는 깡마른 84세의 노인이 어렵게 숨을 잡고 계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15일 전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실 때 이미 의식은 없으셨고, 3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도 무시하시고 벌써 15일을 이 상태로 계신 겁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합니다만, 이미 2시간 전쯤에 돌아가셨을 분인데, 의사인 제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당직 의사인 듯한 분께서 형님과 저를 조용히 복도로 불러내 하신 말씀입니다.
'막내 때문이구나!' 왜 그제야 그 생각이 났는지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가 거짓말을 했는데요. 실은 막내 8년 전에 죽었습니다. 가시면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씀드리자 마지막 숨을 놓으시던 어머님...
막내는 우리 삼형제 중 유독 머리가 좋았습니다
2000년 3월 어느 날 새벽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부산경찰서인데요. OOO씨를 아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시체가 발견이 되었는데, 와서 확인을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원주공항에서 김해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제발 동생이 아니길 빌었습니다. 막내는 삼형제 중 유독 머리가 좋았습니다. 시골학교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가정 사정상 형과 나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고 어렵게 검정고시를 했지만, 이 녀석은 그래서 가문의 희망이고 집안의 꿈이었습니다.
군 생활을 하던 83년도. 당시 형님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내는 상담대상을 나로 정했는지 첫 면회를 왔습니다.
"형 나 흥미가 없어서 그러는데, 고등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하면 안될까?"
"행복에 겨운 소리하지 마라. 형들은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만, 넌 여건이 되잖아. 안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른 이야기하자."
몇 달 뒤 두 번째 면회 온 녀석 머리가 길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에게 '너 학교 그만뒀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왜 니 멋 대로냐'라고 말하면 오랜만에 만난 분위기 망칩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어쩔 계획이니?"
"검정고시해서 대학 가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될 거 같아."
"해봐라.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 테고, 스스로 콘트롤 잘해야 할 거다. 이제 학생도 아니니까 소주 한 잔 할래?"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이듬해 검정고시에서 전국 2등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대학을 간다던 녀석이'방통대 하면서 고시공부 할까 생각 중'이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옆에 있다면 흠씬 두둘겨 패주고 싶은데, 녀석이 내 심정을 아는지 면회를 대신해 편지를 보낸 겁니다.
제대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막내 녀석이 "기가 막힌 사업이 하나 있는데, 밀어 줄래?"라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까 가능성이 있어보였습니다. 전 "이건 어머님께서 평생을 마련해 오신 거니까. 꼭 성공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집과 밭을 담보로 1억 원의 사업자금 만들어 줬는데, 딱 1년 만에 망했습니다. 졸지에 집이 없어져 어머님과 형님을 남의 빈집에서 살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녀석은 가끔 전화만 할뿐 좀체 집에 오질 않았습니다.
영안실에서 동생을 만나 데리고 왔습니다
부산경찰서에 도착했더니, 담당형사가 소지품을 보여 줍니다. 시신 사진을 보고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묻자, "앞 건물에서 투신을 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영락공원 시체 안치실로 가보세요."
확인을 하고는 형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막내 만났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 내일 데리고 갈게"라고 한 뒤 다음날 울산에 있는 어느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형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어머님이 충격 받으실지 모르니까 비밀로 하자."
8년간 어머님을 속였습니다
그 이후로 명절 때마다 어머님은 물으십니다.
"막내 연락 오냐. 어떻게 지낸대?"
"어선 타고 외국에 갔대. 그래서 아마 3년은 있어야 온다나봐."
그 후로 2년이 지난 어느 설 전날. 느닷없이 어머님이 물으셨습니다.
"혹시 막내 죽었니?"
머리가 쭈빗서는 충격.
"어제도 통화를 했는데, 뭔 그런 말씀을?"
"정말이냐? 꿈에 비둘기 세 마리가 날아가다가 한 마리가 떨어지더구나."
어머니는 그 말씀 이후로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동생에 대해서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보고 가시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하셨던지, 의학상식이 뒤집을 정도로 목숨을 잡고 계셨던 어머님. 살아 생전에 당신을 속인 건... 조금만 더 어머님을 곁에 두고 싶은 우리 욕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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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눈이 상당히 많이 내리던 어느 금요일,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눈을 감으시기 전에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은 했지만, 눈 때문에 평소보다 40여분 병원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어머님은?"
"아직 살아계셔" 라고 형님께서 말씀은 하시지만,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눈치십니다.
병실에는 의식도 없는 깡마른 84세의 노인이 어렵게 숨을 잡고 계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15일 전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실 때 이미 의식은 없으셨고, 3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도 무시하시고 벌써 15일을 이 상태로 계신 겁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합니다만, 이미 2시간 전쯤에 돌아가셨을 분인데, 의사인 제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당직 의사인 듯한 분께서 형님과 저를 조용히 복도로 불러내 하신 말씀입니다.
'막내 때문이구나!' 왜 그제야 그 생각이 났는지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가 거짓말을 했는데요. 실은 막내 8년 전에 죽었습니다. 가시면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씀드리자 마지막 숨을 놓으시던 어머님...
막내는 우리 삼형제 중 유독 머리가 좋았습니다
2000년 3월 어느 날 새벽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부산경찰서인데요. OOO씨를 아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시체가 발견이 되었는데, 와서 확인을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원주공항에서 김해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제발 동생이 아니길 빌었습니다. 막내는 삼형제 중 유독 머리가 좋았습니다. 시골학교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가정 사정상 형과 나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고 어렵게 검정고시를 했지만, 이 녀석은 그래서 가문의 희망이고 집안의 꿈이었습니다.
군 생활을 하던 83년도. 당시 형님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내는 상담대상을 나로 정했는지 첫 면회를 왔습니다.
"형 나 흥미가 없어서 그러는데, 고등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하면 안될까?"
"행복에 겨운 소리하지 마라. 형들은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만, 넌 여건이 되잖아. 안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른 이야기하자."
몇 달 뒤 두 번째 면회 온 녀석 머리가 길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에게 '너 학교 그만뒀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왜 니 멋 대로냐'라고 말하면 오랜만에 만난 분위기 망칩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어쩔 계획이니?"
"검정고시해서 대학 가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될 거 같아."
"해봐라.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 테고, 스스로 콘트롤 잘해야 할 거다. 이제 학생도 아니니까 소주 한 잔 할래?"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이듬해 검정고시에서 전국 2등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대학을 간다던 녀석이'방통대 하면서 고시공부 할까 생각 중'이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옆에 있다면 흠씬 두둘겨 패주고 싶은데, 녀석이 내 심정을 아는지 면회를 대신해 편지를 보낸 겁니다.
제대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막내 녀석이 "기가 막힌 사업이 하나 있는데, 밀어 줄래?"라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까 가능성이 있어보였습니다. 전 "이건 어머님께서 평생을 마련해 오신 거니까. 꼭 성공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집과 밭을 담보로 1억 원의 사업자금 만들어 줬는데, 딱 1년 만에 망했습니다. 졸지에 집이 없어져 어머님과 형님을 남의 빈집에서 살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녀석은 가끔 전화만 할뿐 좀체 집에 오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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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서에 도착했더니, 담당형사가 소지품을 보여 줍니다. 시신 사진을 보고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묻자, "앞 건물에서 투신을 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영락공원 시체 안치실로 가보세요."
확인을 하고는 형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막내 만났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 내일 데리고 갈게"라고 한 뒤 다음날 울산에 있는 어느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형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어머님이 충격 받으실지 모르니까 비밀로 하자."
8년간 어머님을 속였습니다
그 이후로 명절 때마다 어머님은 물으십니다.
"막내 연락 오냐. 어떻게 지낸대?"
"어선 타고 외국에 갔대. 그래서 아마 3년은 있어야 온다나봐."
그 후로 2년이 지난 어느 설 전날. 느닷없이 어머님이 물으셨습니다.
"혹시 막내 죽었니?"
머리가 쭈빗서는 충격.
"어제도 통화를 했는데, 뭔 그런 말씀을?"
"정말이냐? 꿈에 비둘기 세 마리가 날아가다가 한 마리가 떨어지더구나."
어머니는 그 말씀 이후로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동생에 대해서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보고 가시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하셨던지, 의학상식이 뒤집을 정도로 목숨을 잡고 계셨던 어머님. 살아 생전에 당신을 속인 건... 조금만 더 어머님을 곁에 두고 싶은 우리 욕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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