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비용 23조엔과 50배 늘어난 청소년 갑상선암
한겨레21 입력 2016.03.09. 15:08
[한겨레21]쓰나미가 원전을 집어삼킨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것들
2011년 3·11 사태의 시작은 초대형 지진이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진 발생 3분 만에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진도 7.9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그것만으로 고베 대지진(진도 7), 중국 쓰촨성 대지진(진도 7.5)을 뛰어넘는 초대형 지진이었다. 뒤이어 일본 기상청은 동북부 지진의 진도를 8.4로 수정했다가, 다시 8.8로 정정했다. 이틀 뒤 기상청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진도를 9까지 올렸다.
원전에서 먼 곳이 더 큰 피폭 피해
텔레비전에는 후쿠시마 인근 미야기현 게센누마 시가지가 화염에 뒤덮인 모습이 방송됐다. 지진의 영향으로 전복된 배에서 기름이 번져 마을 일대가 불탔다. 특히 일본 동북부에 피해가 집중됐다. 도호쿠와 간토 지방 850만 가구에 전기와 식수 공급이 끊어졌다. 일본 동북부로 향하는 ‘교통 동맥’인 도호쿠고속도로가 폐쇄됐다. 신칸센도 끊어졌다. 바다에서는 동부 연안 항구가 닫혔다.
다음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왔다. 도쿄대학과 후쿠시마현 공동조사팀이 28개 지점의 피해 조사 결과를 보면, 쓰나미의 높이는 7~21m에 이르렀다. 후쿠시마현 도미오카에는 최대 21.2m 쓰나미가 밀려왔다. 한 주민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지진해일은 도미오카 지역의 명소인 21m 높이의 로소쿠절벽을 넘었다. 그 오른쪽으로 3km 거리에 눈에 보이는 후쿠시마 제2원전이 있다. 건물 외부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원전 내부에서 수소가 폭발한 것으로 의심돼 공포에 질렸다.”
더 큰 문제는 북쪽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이었다. 이곳에 12.2m 높이의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해수면에서 10m 높이에 지어진 제1원전 1~4호기가 모조리 침수됐다. 원전은 자동으로 가동을 멈췄다. 하지만 핵연료가 저절로 반응하면서 추가로 나오는 붕괴열을 식힐 도리가 없었다. 냉각기 가동에 필요한 외부 전원 공급용 철탑이 지진의 여파로 무너진 상황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한 비상용 디젤발전기는 2차, 3차 쓰나미에 침수됐다. 1~5호기가 ‘스테이션 블랙아웃’(전원 완전 상실) 상태에 빠졌다. 6호기에만 디젤발전기 한 대가 살아남았다. 붕괴열을 견디지 못한 원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뚜껑이 열리고, 벽이 녹아내렸다. 방사능이 미쳐 날뛰었다.
불행히도, 이때 쏟아진 비와 눈이 원전에서 갓 쏟아진 초고농도 방사성물질을 운반했다. 원전에서 반경 20km 안에 있는 나라하마치보다 40~50km 떨어진 이다테무라에서 참담한 피폭 피해가 있었던 이유다.
오염탱크 1천여 개, 버릴 수가 없다
5년 뒤인 현재의 후쿠시마 상황을 자조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화장실 없는 아파트’다. 후쿠시마 전체가 오염물질을 배출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비유다. 현재 제1원전 안에는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눈·비·지하수 75만t이 담긴 저장탱크 1천여 개가 있다. 사라지지도, 다른 곳에 버릴 수도 없는 게 방사능 오염물질이다.
| |
‘저장 용량이 부족하면 어쩔 것이냐’는 질문에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줄여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원전 내부의 폐연료봉 수천 기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제1원전 폐기(폐로)까지 30~4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전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 내부에 5년째 진입조차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40년 뒤 폐로가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재로선 아무 대책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
방사성물질을 청소하거나, 방사능을 닦아내는 제염 작업에서도 막대한 쓰레기가 나오고 있다. 2015년 6월 기준, 후쿠시마 인근 12개 광역지자체에서 나온 방사성폐기물이 16만t을 넘었다. 특히 후쿠시마현에만 13만8천t이 집중돼 있다. 지난해엔 방사성폐기물을 담은 검은 포대(플레콘백) 700여 개가 태풍과 집중호우에 휩쓸려 하천이나 다른 지방으로 떠내려가기도 했다.
수습 과정은 더디고, 미덥지 못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녹아내린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다. 도쿄전력 쪽은 “최대 과제는 녹아내린 핵연료를 꺼내는 것”이라면서도 “(폐로 작업은) 등산에 비유하자면 10부 능선 가운데 간신히 1부 능선에 올랐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이들은 “원전 내부가 아직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주택과 도로를 씻거나 닦아내 방사선량을 낮추는 제염 작업도 비슷하다. 제염 작업 과정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나마 전국에서 몰려든 뜨내기들이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제염 작업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차 피폭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돼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대기업에 제염 작업을 위탁하면, 대기업은 현지 중소업자에게 일을 맡기고, 이들이 다시 일용직 노동자에게 하청을 주는 다중 하청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대기업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복구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애초 취지도 무색해졌다.
실효성 논란이 있는 이런 작업에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다. 오노 아키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은 2월10일 외신기자들과의 현장검증 뒤 “후쿠시마 복구 비용에 이제껏 들어간 전체 비용은 말할 수 없다. 1조~2조엔이라고들 말하지만 계약 진행 중인 것이 있어 현 단계에서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4년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방사능 제염 작업과 원전 폐로에 투입되는 돈을 23조엔(약 245조5천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그해 일본 정부 전체 예산이 95조엔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도쿄전력 쪽이 “폐로는 작업이라기보다 새로운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일용직 노동자를 악용해 대기업에 혜택을 몰아주는 ‘하청 사업’에 대해 오노 소장은 “장래성 있는 사업”이라고까지 설명했다.
귀환 주민 무상주택 2017년 3월 중단
그사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나빠지고 있다. 일본 오카야마 국립대 쓰다 도시히데 교수팀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2011년 10월부터 4년여간 후쿠시마 인근 청소년(18살 이하) 30만 명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일본 평균치와 견줘 20~50배까지 높게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월 조사에서는 원전 사고 뒤, 후쿠시마 아동 116명이 갑상선암 확정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상시 전국 평균과 견주면, 후쿠시마 인구 대비 아동 갑상선암 확진자는 2명 정도가 늘었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강제적인 ‘주민 귀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주민 가운데 ‘자발적 피난민’에게 제공되던 무상주택 혜택이 2017년 3월부터 중단된다. 전체 피난자의 20%가 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같은 달, 정부는 ‘귀환곤란구역’을 뺀 모든 구역에서 피난 지시를 해제하겠다는 방침이다. 2018년 3월에는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1인당 월 10만엔(약 106만원)씩 주던 정신적 보상금도 중단하기로 했다.
후쿠시마(일본)=홍석재 기자forchis@hani.co.kr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바로가기(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