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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2008년 11월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를 연 뒤 군의문사위 폐지 및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에 반대하며 국회를 향해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막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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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가 '사고사'로 위장된 타살 사건을 밝혀내 국방부에 사망구분 재심의를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군의문사위는 지난해 10월말 '심규환 사건'(진정 378호)에 대해 "망인이 위병초소 근무 중 피진정인 고아무개 하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군의문사위 결정은 이의신청기간(결정일로부터 60일 이내)이 지나 최근 공개됐다.
이 사건은 지난 1979년 8월 20일 육군 35연대 4대대 소속 심규환(당시 22세) 상병이 위병근무 도중 총기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해당 부대는 "심 상병이 처와 부모의 고부갈등으로 인한 신병비관으로 자살했다"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심 상병의 어머니 박성임씨가 "자살 원인이라는 고부갈등은 허위사실"이라며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내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군의문사위 "1979년 심규환 사건, 자살 아닌 타살"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심 상병은 근무 도중 위병조장이었던 고아무개 하사와 다툼이 있었고, 고 하사가 발사한 총알이 안면을 관통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부대지휘관과 인사계, 부대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자살'로 상부에 보고했다. "대대장과 중대장이 진급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사인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심 상병의 상급자들은 부하들에게 지시해 총알이 발사된 심 상병의 총과 고 하사의 총을 바꿔치기했고, 증거로 제출된 전투복도 가짜를 내놓았다. 총을 쏘면 발사한 사람의 옷에는 화약흔이 남는다. 심 상병 상급자들은 총을 쏜 고 하사의 옷을 사망자인 심 상병의 군복인 것처럼 증거로 제출했고, 고 하사의 옷은 새 군복을 내놓았다.
군의문사위는 조사를 통해 총기기록대장을 변경해 사고 총기를 바꿔치기하고, 가짜 전투복을 제출한 병사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한 부대원은 "중대장과 헌병이 입을 맞춰 헌병대 수사기록이 조작되고 짜깁기됐다"고 털어놨다.
군의문사위는 "심 상병이 고 하사가 발사한 총탄에 사망했지만 부대 간부와 지휘관들이 총기교체, 군복의 교체 등을 통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했고, 헌병대의 부실한 현장조사와 수사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고 판단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군 당국과 부도덕한 지휘관들이 '자살'로 은폐한 사건이 30년이 지나서야 드러나게 된 셈이다.
'타살→ 사고사' 은폐한 '박율기·최명길 사건'도 재심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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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 20일 열린 군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 모습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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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군의문사위는 '박율기 사건'과 '최명길 사건'에서도 타살이 사고사로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방부와 경찰청에 재심의를 요청했다.
'박율기 사건'은 지난 1964년 육군 9사단 포병대대 소속 박율기(당시 23세) 상병이 야삽을 휘두른 선임병의 폭행으로 사망했음에도 "페치카(벽난로)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군 당국이 은폐한 사건이다.
박 상병을 폭행한 김아무개 병장은 보통 군법회의에서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고등군법회의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가해자 김아무개 병장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 변호사를 선임한 적이 없음에도 갑자기 두아무개씨가 사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고등군법 재판에서 "가해자는 야삽으로 어깨와 엉덩이를 때렸을 뿐"이라고 변론했다. 고등군법회의는 "어깨와 엉덩이를 맞은 것과 박 상병의 사망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군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 김 상병의 동료와 상급자들은 모두 사망자가 야삽으로 머리를 맞아 죽은 것으로 인정했으며, 특히 김아무개 병장도 "2~3차례 머리를 때린 것 같다"고 시인했다. 결국 이 사건 역시 진급 불이익을 두려워한 지휘관이 사건의 전말을 왜곡했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최명길 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4일 전남 제507전투경찰대에 배속된 최명길(당시 21세) 이경이 사흘 만인 4월 7일 연병장에서 맞아 죽은 사건이다.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최 이경은 훈련장소(연병장)도 아닌 정비창고 뒤에서 선임병들로부터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선임병들은 처벌이 두려워 "방독면을 쓰고 훈련받던 도중 쓰러졌다"고 사건을 은폐했다. 해당 부대 작전관 등 지휘관들도 "훈련하다 쓰러지는 것을 내가 봤다"고 거짓보고를 했다. 사건을 조사한 순천경찰서 소속 경찰조차 "사고 지점을 확인했을 뿐 부대원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고 말해 부실수사를 했다고 인정했다.
'최명길 사건'은 최씨의 후임대원이었던 장아무개씨가 군의문사위에 진정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최씨는 현재 순직 처리돼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지만, 군의문사위는 경찰청장에게 사망구분을 재심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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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동 전 군의문사 위원장. 후임 위원장은 아직 선임되지 않았다. |
ⓒ 오마이뉴스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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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문사위 활동기간, 채 1년도 남지 않아
한편 '심규환 사건' 등 3건에 대한 진상규명 결정으로 군의문사위 진정사건 600건 중 395건이 종결됐다. 이 중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진 진정사건은 총 146건에 달한다.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사망원인이 뒤바뀐 사건이 146건이라는 뜻이다.
나머지 205건의 진정사건은 미종결로 남아 있지만, 군의문사위 활동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아 제대로 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지난해 12월 말 임기가 끝난 이해동 위원장의 후임 인선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군의문사위는 '식물 조직'으로 전락한 상태다.
군의문사위 관계자는 "진정 사건을 조사해 오던 조사관들이 다 쫓겨난 상황이라 미종결 사건들이 제대로 마무리될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