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2가 된 아들이 지난 8월 중순,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사 능력검정고사' 1급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6급 시험에 도전한 후 만 4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이니 아들도 무척 기뻐했고 저 역시 아이가 대견했습니다. 그것도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수준이라는 1급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을 했으니 말입니다.
아들은 장래 희망이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배우는 학교 역사 교과서가 실제 사실과 다른 것 같다며 늘 부족한 아빠에게 묻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책을 구입해 스스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과목은 고만고만한데 늘 국사 과목만은 내신 1등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자기 별명을 '국사의 신'이라고 부른다며 재잘대던 아들입니다. 커서 제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는 합격 사실을 빨리 선생님에게 자랑하고 싶다며 개학 날,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야간 자율학습을 마시고 오후 10시가 넘어 들어온 아이는 상심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아 우쭐거리며 들어설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의 표정은 예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국사과목 선생님은 뽑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말에 아이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아빠. 오늘 선생님께 제가 1급에 합격했다고 하니까 잘했다고 칭찬하셨는데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역사 선생님을 당분간 뽑지 않을 거라고 하시면서 역사학과로 대학을 가지 말고 고대사나 역사 유물을 발굴하는 학과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는데 그거 진짜예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말에 저 역시 놀랐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그동안 간직해왔던 역사 선생님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한 첫 단추가 1급 합격이라고 생각한 아이에게 지난 4년간의 노력이 허망하게 느껴졌을 법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잘 모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걱정하는 아이에게 믿음을 주고 싶었습니다.
"아빠도 처음 듣는 말이라 자세히 모르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아빠, 엄마를 믿고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 일단 담당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으니 그것이 사실이겠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교육 정책은 사실 자꾸 바뀌는 거 알잖아. 네가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 올 때에도 국사가 지금처럼 되겠니? 그때까지 대통령이 2번은 바뀐다. 걱정하지마!"
10년 후 우리 아들은 뭘 하고 있을까?
큰소리는 쳤지만 내심 답답했습니다.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아들을 정말 이대로 두고 봐도 좋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목표를 바꿔 다른 진로를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판단이 안 섰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아이의 꿈을 밀어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시험에 합격한 기념으로 선물을 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고등학생이니 당연히 평소 자기가 좋아하던 누룽지 백숙이나 피자 등을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 출판된 <김대중 자서전>을 사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동네 도서관에 입고 되면 읽을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웠고 아이가 좋은 책에 관심을 가져주니 또 고마워 그날로 주문을 했습니다. 다음날, 배송된 책을 주니 아이는 주말동안 잠을 줄이며 책을 읽어갔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자서전>에 담긴 생생한 정치 근·현대사를 보며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접해 행복해 하는 아이의 표정 속에 결심했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고 행복하다면 해라. 정말로 선생님 말씀처럼 앞으로 몇 년간 국사 선생님을 뽑지 않는다 해도 네가 그렇게 행복하다는데 난 널 막을 수 없구나. 지금 비록 국사가 외면받고 있지만, 또 국사 1등급 받는 것을 영어나 수학 2등급 받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 치지만 난 네가 자랑스럽다. 정 안 되면 우리 같이 역사 책이나 쓰지 뭐. 부자가 함께 쓴 대한민국 근현대사, 근사하잖아."
독도를 모르는 아이들, 역사를 모르는 미래
지난 8월 초, MBC 프로그램 <후 플러스>편에서는 <국사, 안 배워도 그만?>을 방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함께 시청한 아들 역시 그랬습니다.
특히 "신라가 우산국을 정복한 이후 울릉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땅이 되었음에도 일본이 자신의 섬이라고 주장하는 울릉도의 부속 섬은 무엇인가?"라는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 2학년 근현대사 시험에 50%가 넘는 학생이 '제주도, 마라도, 대마도' 등 오답을 적었다는 자막에 아들은 크게 분개했습니다. "저런 문제는 선생님이 점수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인데 어떻게 저 정도를 틀릴 수 있냐?"며 나이답지 않은 모습으로 개탄하는 아들의 말에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10년 후,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이 되어버린 국사를 지금처럼 학생들이 외우는 것이 많다고 외면한다면 그때는 우리 아들이 희귀종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것은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들 말에 의하면 국사를 좋아하는 친구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 하나가 빠졌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 친구 담임 선생님이 국사 과목은 어려우니 다른 과목을 하라고 권해 빠졌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방송에 의하면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는 문과 입시생 중에 3명만이 국사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역사가 학교에서 외면 당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알려진 것처럼 그동안 필수 과목이었던 국사가 2009년 모든 과목이 선택 과목화되면서 같은 원칙을 적용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국사를 다른 과목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교과부에 유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교과부는 '국·영·수' 과목 위주로 수업이 짜여있는 오늘날 대학 입시 준비 상황에서 역사가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그리고 국사 과목이 선택 과목이 된다면 학생들이 기피하게 될 것이라는 여론을 들어 본 적이 없을까요? 하지만 이미 확인된 국사 교육의 위기속에서도 교과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대책도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중국-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설 '역사 국가대표'로 키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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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후 플러스> '국사, 안 배워도 그만?' 중 일부 |
ⓒ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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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처럼 지금 중국, 일본은 오래 전부터 자기 입장에서의 역사 해석과 의도적 왜곡으로 우리나라와 사실상의 '역사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과 중화주의 사상 강화에 따라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주 국가가 아닌 중국 변방의 식민지로 강등시키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의 역사 교과서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기 위한 노력은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의 역사 교육 비율에 있어 일본 10.1%, 중국 9.4% 등인데 우리나라는 고작 절반 수준인 5.4%로 현저히 떨어진다고 이날 MBC <국사, 안 배워도 그만?>편에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더욱 더 치열해질 중국, 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맞설 우리나라 '역사' 대표 선수로 제 아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아들도 자기의 일생을 다 살고 난 마지막 순간에 2010년 어느 날, 아버지가 준 그때의 희망이 정말 옳은 결정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되도록 아들에게 힘차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절대 네 꿈인 역사 선생님을 포기하지 말거라. 이 아빠는 영원히 네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