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공격은 모두 끝이 났다. 이제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가는 과정만이 남아있다. 사필귀정이 될 것이다”지난 1일 서울남부지법이 <PD수첩> 제작진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조능희 전 <PD수첩> PD의 답이다. 목소리는 예상밖으로 담담했다. ‘사필귀정’이라는 단어에 모든 게 담겨 있다는 듯 보였다.
세계 언론 사상 황당한 사건 벌어지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2일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장관이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사안을 보도했고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면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사실상 <PD수첩> 제작진의 ‘승리’라고 평가했고 심지어 보수성향의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서조차 MBC 노동조합의 반론을 싣고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짚을 정도였다.
그런데 불과 사흘 뒤인 5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법원이 형사상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보도의 주요 내용은 허위라고 판시해 진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에게 사과드린다”는 사고(社告) 방송을 냈다.
또한 <뉴스데스크>는 리포트를 통해서도 “대법원은 지난 2008년 4월 29일 <PD수첩>의 보도 중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로 지칭한 것은 ‘허위’라고 판결했다”면서 “미국 여성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숨진 것처럼 언급한 부분과 한국인이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에 이른다고 지적한 부분도 ‘허위’로 결론 내렸다”고 보도했다. 자사의 뉴스를 통해 대법원이 판결하지도 않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MBC는 회사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조능희, 김보슬 PD에게 정직 3개월을 송일준, 이춘근 PD에게는 감봉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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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능희 전 PD수첩 PD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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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차원의 언론탄압 사건에 대해 최고의 사법기관이 제작진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오히려 회사에선 그 올려진 손을 억지로 끌어내려 ‘자해’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역사의 코미디는 반복되는 법이다.
MBC는 결국 사과 방송을 정정보도해야 하는 또 한번의 코미디 같은 상황에 처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5부(유승룡 부장판사)가 지난 1일 MBC ‘PD수첩’ 제작진이 <뉴스데스크>의 광우병 사과방송과 관련해 M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고 ‘사과 방송을 정정하라’고 밝히면서다.
재판부는 “당시 대법원의 심판 범위는 정정보도의 이익 여부였지 ‘다우너 소’(주저앉은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 미국 여성 아레사 빈슨의 사인 등에 대한 보도의 허위 여부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그 부분을 허위라고 명시적으로 판결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부정확하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한마디로 MBC의 사과 방송이 허위 날조라는 지적이다.
조능희 PD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9월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세계 언론 사상 황당한 사건으로 기억될만 했다”면서 “그것을 법원에서 제재를 한 것이고 사과 방송을 정정방송 하라는 웃기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PD는 지난해 9월 <뉴스데스크> 보도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하고 2심에서 파기 환송이 되면서 사실상 여론이 <PD수첩>의 승리로 평가하자 김재철 사장이 어떻게든 역으로 <PD수첩>을 흠을 내기 위해 대법원의 권위를 이용해 보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PD는 MBC가 해당 리포트를 내보내기 전 법률적 검토까지 마친 상황이었고, 정정반론을 피하기 위해 의견 형식의 보도를 취했다면서 “하지만 대법원이 건드리지도 않는 얘기를 가지고 무리하게 <PD수첩>을 확인사살을 하려다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PD수첩> 제작진의 반격 탄력 받을 듯
지난 4월 총선 이후부터 노골적으로 정권 편향적인 뉴스를 쏟아내며 뉴스 사유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지난해 9월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시청자에게 정권 홍보 뉴스라는 것을 인식시키면서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조 PD의 분석이다.
다만, 조 PD는 “지난해 9월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정권의 왜곡된 공격과 정권과 일부 결탁한 어용 언론들의 공격이었다”면서도 “당시 MBC 보도가 너무도 황당해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을 뿐 <PD수첩> 흠집내기라는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서 기각이 되긴 했지만 손해배상청구 금액도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PD수첩> 제작진은 정정반론 소송을 제기하려면 소송 가액을 적시해야 한다고 해서 상징적으로 ‘1961원’을 손해배상청구액으로 신청했다. MBC 설립연도인 1961년을 상징한 것인데 MBC 경영진이 창립 정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번 판결로 인해 <PD수첩> 제작진의 ‘반격’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9일 <PD수첩> 제작진이 제기한 징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판결로 징계 근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PD수첩> 제작진이 중앙일보 대표이사와 박유미 기자, 정병두, 전현준, 박길배, 김경수, 송경호 등 5명의 검사에 대해 공동불법행위 혐의와 명예훼손으로 2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판결도 빠르면 다음해 1월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9년 6월 15일 중앙일보는 “검찰이 확보한 빈슨 유족의 의료 소송 소장과 재판 기록 등을 보면 고소인과 피고소인 측 모두 ‘vCJD’(변종 크로이트펠트-야코브병)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고 곧바로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10월 공판에서 빈슨의 유족이 위 절제 수술에 참가한 메리뷰 병원 의료진과 주치의 바롯 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의료소송 소장을 변호인이 공개하면서 중앙일보와 검찰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PD수첩> 제작진은 소장에서 “공익의 대변자여야 할 검찰이 정치적 고려에 의한 기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활용하고자 악의적으로 기자 1명에게 허위사실을 제보하고 이를 보도되게 한 것”이라며 “또한 피고 박유미(중앙일보 기자)는 의료소송의 소장만 검토해보더라도 바로 확인가능한 사실을 어떠한 확인 절차도 없이 그대로 받아 적어 이를 보도하였다”고 지적했다.
조능희 PD는 중앙일보와 검찰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본질은 고위 검찰이 사실을 허위로 쓰게 하고, 허위 제보가 확인이 되지도 않았는데 확인됐다고 쓰게 된 것이다. 언론 보도 윤리상으로 중요한 판결로 향후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